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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를 통해 본 학교환경교육과 교사의 역할
작성자 : 해커스 임용 등록일 : 2019-10-04 조회수 : 107 주소복사

사례를 통해 본 학교환경교육과 교사의 역할

                     

                            
  들어가며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때문에 학교의 일상도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수술실 의사처럼 마스크 차림으로 교문을 통과한다. 공기정화기는 교실에서도 필수품이 되었다. 체육수업을 운동장에서 하지 못한지는 꽤 오래됐다. 밖으로 가던 봄가을 현장체험학습과 만국기 아래에서 뛰놀던 운동회는 이제 실내 프로그램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교실 놀이나 교실 체육 관련 연수가 인기를 넘어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미세먼지나 미세플라스틱과 같은 이슈들로부터 환경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새삼 느낀다. 사실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의 기원은 엄밀히 말해 인류의 탄생 시점부터일 것이다. 그러나 환경교육의 시작은 그 최근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197710, 트빌리시 선언은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의 공감에서 이루어졌고, 환경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를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환경교육은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고,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학교의 환경교육은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에너지를 아껴 쓰는 것이다. 환경행동의 실천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환경 수업은 어쩌면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먼저, 작은 빙산 조각에 불쌍히 표류하는 북극곰 영상을 같이 본다. 저학년일수록 더 큰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유한다. 일부 아이들은 북극곰 생존 위기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모두 북극곰에게 편지를 쓰거나 환경행동의 실천을 다짐하며 수업은 마무리된다.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살 곳이 없어지는 북극곰이 불쌍하다고 했다.

 

  환경교육에서의 환경행동

  환경교육에서 환경행동은 중요하다. 환경행동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헝거포드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환경행동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 및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이라고 했다(Hungerford and Peyton, 1976). 이는 합리적 행동이론과 여기서 발전된 계획적 행동이론에 영향을 받은 개념이다. 전통적 환경교육은 환경행동을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직접적인 인자인 태도, 주관적 규범, 지각된 행동통제력 등을 밝히는 데 주력해왔다. 이를 통해 피교육자가 환경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을 환경교육의 최대 목적으로 봤다. 환경교육은 꽤 오랫동안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개인의 책임 있는 환경행동의 실천이라는 행동주의적 목적 달성에 매진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간에 학교의 환경교육은 아이들을 가르쳐 책임 있게 환경행동을 실천하는 어른들을 길러냈을까? 개인의 환경행동이 지구와 세상의 지속가능한 위기 해결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경험상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가 지나면 학급의 서너 명 이상씩은 착한 아이 마법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 전까지의 아이들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수용과 실천에 상대적으로 매우 적극적이었다. 착실하게 분리배출하고, 안 쓰는 콘센트 뽑기에도 철두철미했다. 그러나 마()3학년 1학기를 지나온 아이들은 북극곰 영상과 환경행동의 다짐만으로 실천에 쉽게 이르지 못한다. 아는 것이 많은 어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내적 설득의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윤리성과 결부시켜 환경행동을 강조하는 교육방식은 오히려 환경행동에 대한 부담과 피로감을 불러와 빠른 포기를 낳을 때가 종종 있음을 교실에서 본다.

 

  얼마 전 세계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스웨덴의 16살 그레타 툰베리라는 학생 이야기다. 그녀는 환경운동가이다. 툰베리는 20188, 스웨덴 의회 앞에서 첫 시위를 한 이후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가 아닌 거리로 나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forFuture) 운동을 펼쳐왔다. 툰베리가 주창한 운동은 독일과 벨기에, 영국, 프랑스, 호주 등을 비롯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기후변화 행동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등교 거부 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노르웨이 의원들은 그녀를 201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툰베리를 후보로 추천한 의원들 중 한 명은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전쟁과 분쟁, 난민 문제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후보 추천 이유에 툰베리의 행동을 꼽았다(김서영, 2019.3.15.). 툰베리는 왜 거리로 나갔을까? 그녀는 왜 개인적 차원의 환경행동이 아닌 지역적이고 국가적이며 세계적인 환경행동을 선택했을까?

 

  환경교육이 개인의 책임 있는 환경행동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학습자들의 행동이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연구가 있다(Hart et al., 1999; 김찬국 2013; 강진영 2019). 이것은 전지구적 시장자본주의가 환경문제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해서이지 않을까?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자본주의를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에 비유했다. 그는 시장자본주의가 인간과 사회를 맷돌에 넣고 통째로 갈아 인간 본성에 내재한 사회성 내지는 공동체성을 해체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이 사는 자연환경을 치명적으로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환경문제라는 인류 공동위기에 대한 화살이 그동안 너무 편파적으로 생활체제에 파편화된 형태로 존재해온 개인에게 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재영, 2017)에 공감한다. 그래서 의문이고 걱정이다. 개인의 환경행동과 그에 따른 책임만을 강조하는 한정된 범위의 환경교육에서는 행동하는 툰베리를 키워낼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회-생태적 시스템

  환경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살피고 지구의 문제에 깊숙하게 개입하게 하려면 그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환경교육의 관점에 대한 논의를 사회-생태시스템(social-ecological systems)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Holling, 1973; Jensen and Schnack, 1997; Sterling, 2003; Pelling, 2011). ‘사회-생태시스템이란, 탄력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시스템을 의미한다. 환경을 환경으로서만 바라보지 않고 사회와 경제, 문화와 지역이라는 확장된 범위에서 통합적으로 보게 되면서 등장한 개념이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범교과 학습주제 중 하나인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수업사례: 할인율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주제의 토론 수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환경교육 학계에 유명한 논쟁(홍종호, 2016)이 있다. 스턴보고서로부터 촉발된 스턴(Stern)과 노드하우스(Nordhaus) 및 와이즈만(Weitzman) 간의 할인율 논쟁이 그것이다. 내재적 할인율과 소비의 한계효용 탄력성 등 쉽지 않은 개념도 등장하긴 하지만,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수준에 맞게 재구성하면 초등학생들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논쟁만큼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입장이라는 관점에서 지속가능발전을 명확하게 바라보게 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경제학에 관한 스턴 연구보고서(Stern Review Report on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에서 스턴은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재앙을 가져올 것이고,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경제적 피해를 포함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스턴은 그 해법으로 2050년까지 매년 전 세계가 생산하는 총생산(Gross World Product, GWP)의 평균 1%를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사용하자고 주장을 했다. 세계총생산의 1%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인류의 생존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가치 있는 투자라고 스턴은 설명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노드하우스와 와이즈만은 스턴이 계산해낸 할인율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로부터 할인율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할인율은 δ + η*g로 나타낸다1). 이 공식에 의하면 내재적 할인율이 높을수록 할인율이 높아진다. 내재적 할인율은 사회적으로 결정된 시간에 대한 순수한 선호(pure time preference)의 정도이다. 쉽게 말해, 미래의 가치보다 현재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재적 할인율이 높은 사람이다. 이들은 미래에는 현재의 가치가 많이 할인(discount)되어 낮아지기 때문에 현재의 가치를 선호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반대로 내재적 할인율을 낮게 잡았다고 함은 미래의 가치는 현재의 가치에서 많이 낮아지지 않을 것이고, 높은 내재적 할인율을 주장하는 쪽보다 미래가치를 더 크게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할인율 계산에 있어 스턴은 내재적 할인율을 0.1%로 보았다. 윤리적 측면과 세대 간 형편의 문제 등을 고려하여 미래세대에 관한 할인율을 낮게 잡은 것이다. , 현재에 비해 미래의 가치를 크게 본 입장이다. 그러나 노드하우스와 와이즈만은 현재가 미래에 비해 더 가치 있다고 보았기에 내재적 할인율을 3~4%로 높게 잡아야 한다며 스턴의 주장을 반박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지속가능발전수업은 간단한 세 개의 질문을 던지며 시작했다.

  급식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좋아하는 반찬을 먼저 먹을 건가요? 아니면 아껴서 나중에 먹을 건가요?”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놀고 싶어요. 여러분은 놀고 나서 숙제를 할 것인가요? 아니면 숙제를 하고 나서 놀러 갈 것인가요?”

  “보험은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지금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보장이 많고 지불 비용이 높은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가입할 것인가요?”

 

   답변 결과에 따라 현재의 가치를 중시하는 아이들과 미래가치를 중시하는 아이들 그룹으로 각각 앉는 자리를 재배치한다. 아이들은 동일 그룹 안에서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며 세 질문에 대한 상대 진영 친구들의 답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비로소 논쟁과 토론을 위한 능동적 출발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을 2007215일의 미국 예일대 캠퍼스로 데리고 간다. 역사적 장면에 대한 짧은 소개만으로도 아이들은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사다리를 통해 금방 감정적 동조에 이른다. 이제 맛있는 급식 반찬을 먹는 순서에 대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스턴인 것처럼, 노던하우스와 와이즈만의 입장에서 서툴지만 논쟁할 수 있게 되었다. 반찬 먹는 순서와 미래 세대에 대한 가치 부여의 입장이 내재적 할인율이라는 관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논쟁을 통해 상대를 설득시키려면 논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환경과 관련된 경험을 끄집어내고 어디서 보고 들었던 배경 지식을 경쟁적으로 이야기하며 해당 진영에 대항하는 논리를 만드느라 애쓴다. 교사는 잠시 뒤로 물러서 있으면 된다. 작전타임 이후에 몇 번의 논쟁을 더 주고받으면 두 진영 사이에 무게추가 어디로 기우는지 대략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깊이 있는 토론을 위해서 논증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힌트를 논리가 부족한 진영에 무심코 던지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그런데 참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번도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던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개념을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환경개발위원회(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WCED)1987년에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는 지속가능발전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했다. 할인율 수업에서 아이들은 교사의 전달과 설명이 없어도, 현세대와 미래 세대 간 욕망의 균형을 찾는 일, 인간과 지구의 공존을 모색하는 일이 고민해야 할 문제임을 충분히 공유했다. 환경문제가 멀리 있어 나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연결된 공동의 문제임을 발견하는 일, 이것으로부터 환경문제에 대한 시야가 확장되고 근본적 원인에 문제 제기하는 환경행동이 시작되지 않을까?

 

  환경교육과 교사의 역할

  이 여정에 교사의 존재는 특별하다. 그렇다고 대단한 것을 준비하고 어려운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지구적 연결성을 깨닫게 하고 그들이 환경을 보는 시야를 확장하도록 도우려면, 교사 스스로 그 연결성과 넓은 시야를 가지면 된다. 아이들과 같은 호기심(inquiry)을 가지고, 배움의 장면에 함께 몰입함으로써 교사는 아이들과 연결되며 아이의 시야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연결과 시야는 지구적인 수준의 그것들과 같은 맥락이다. 마치 스턴의 논쟁과 급식 반찬의 가치부여와 같은 맥락이었던 것처럼.

 

  나가며

  아마존의 대형화재와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국토개발정책에 대한 기사를 같이 읽고 개발과 보호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수업은 어떨까? 인구 과잉과 기후변화, 환경파괴라는 이슈에 식량과 물, 에너지를 외부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독립형(off-grid) 재생마을 리젠빌리지(ReGen Villages)를 아이들과 같이 설계해보고 문제점을 찾아보면 재밌지 않을까? 환경교육으로 뿌린 씨앗이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수많은 형태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기를 기대한다.


- 출처 : 교육정책 네트워크